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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환쌤의 논리와 감성

로고스 논술구술학원 김정환쌤의 공부에 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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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실한 천주교인인 막내누나가 신부님의 강론에 화가 났다. 스승의 날이 가까워오던 주말, 초등부 미사 중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단다. “학교나 학원 선생님들은 너희에게 ‘고용된 사람’인데도 너희가 고맙다고 인사하잖니? 주일학교 선생님들은 봉사로 하는 분들이니까 더 고맙다고 해야지” 참고로 누나는 ‘학교 선생님’, 나는 ‘학원 선생님’이다. 

 

 주일학교 선생님들께 감사 인사를 전하는 건 당연하다. 문제는 ‘고용’ 부분이다. (학생이 아니라 학부모에게 고용되었다고 해야 맞는다는 뜻이 아니다.) 하긴, 시장경제에서 당연한 얘기 아니냐고 되물을 수 있다. 뭐든 ‘거래’적 관점에서 보는 게 ‘쿨’하다고 여겨지는 세상이다. 경제학은 사회 전반을 설명하는 지위에 오른지 오래다. 

 

 하지만 누나가 화가 난 건 단지 ‘아이들에게 고용된 처지’로 묘사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나 역시 새삼스레 ‘스승’임을 인정받고 싶어 공감하지는 않았다. 문제는 그보다 좀 더 깊은 데에 있었다.

 

 현대 경제학은 가치의 문제에 둔감하다. 비용과 편익의 변화에만 집중한다. 이러한 거래의 관점에서 현상을 설명하면, 명쾌할 수는 있으나 인간사의 미묘한 디테일이 다 거세된다. 아이의 성장을 지켜보는 흐뭇한 부모의 표정을 경제학자는 ‘노후 대비를 위한 투자’라고 풀어낸다. 명쾌는 하겠지만 뭔가 불편하다. 

 

김정환_이룸이앤비_논리와감성.png

  같은 맥락에서 선생님(어떤 형태로든 돈을 받고 가르치는 선생님)을 ‘교육 서비스의 제공자’, 학생을 ‘소비자’로 여기는 거래적 관점의 문제가 드러난다. 그런 설명이 불가능해서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학생들의 이해를 좁힐까 우려된다. ‘쿨’할지는 모른다. 하지만 ‘쿨’에는 온기가 없다.

 

  세상사 인간관계가 전제되지 않은 일은 없다. 사람이 있고 거래가 있지 그 역이 아니다. 매일 얼굴을 맞대고 배우는 선생님을 ‘피고용자’로 보는 학생들이 식당 종업원에게 공손한 어른으로 자랄 리 없다. ‘갑질’의 기원은 먼 데에 있지 않다. 

 

  타자를 기능적으로 대하는 것, 그리하여 목적이어야 할 인간이 수단화되는 현상을 ‘인간 소외’라 부른다. 중고등학교 학생들에게는 익숙한 ‘빈출어휘’다. 하지만 부지불식간에 자신들이 그러한 소외의 주체이자 객체가 되어 가고 있는 걸 그들은 알까. 앎과 삶의 간극이 이렇게 크다. 

 

 사족. 여전히 경제학적 관점을 고수한다 하더라도 한 번씩 아이에게 주변인이 ‘사람’임을 환기시키는 건 ‘더 나은 서비스’를 위해서라도 나쁘지 않다. 특히 배우는 일은 정서 공유가 전제되지 않으면 불가능하기에, 그러한 정서의 교류는 ‘비용 대비 편익’이 크다. 
 

 

로고스 논술구술학원

김정환 강사 

이룸이앤비_김정환.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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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중고등학교를 다니던 80년대 말과 90년대 초에는 학생 수가 지금보다 훨씬 많았다. 한 반에 50명은 기본이었다. 내가 다닌 고등학교는 한 학년에 20반까지 있었으니, 동급생은 1,000명 이상이었다.

 

하루는 교내 마라톤대회가 열렸다. 달리기에 자신이 없던 나로서는 ‘남들 의식 않고 내 페이스대로 뛰겠다’는 딱 한 가지 목표만 세웠다. 결과는 1,000명 중 90위권. 나로서는 상당한 쾌거였다.

그 때 ‘나에게 집중하는 일’의 가치를 알았다. 나를 극복하니 남도 극복됐다. 결국 사람 능력은 다 비슷했다. 그렇다면 굳이 남들을 두리번거릴 필요도 없었다.

물론 주변은 살펴야 한다. 더불어 사는 세상, 일정한 보조는 맞춰야 한다. 다만 자기 중심을 잡자는 이야기다. 부화뇌동 하다가는 될 일도 안 된다.

 

‘남이 장에 간다고 거름 지고 나선다’는 속담이 있다. 그게 자기일 거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남이 명품백 산다고 덩달아 해외직구 사이트를 들락거리는 모습은 흔하다.

공부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공부법에도 성적이 제자리라면 문제의 본질을 직시해야 한다. 제대로 된 공부법을 못 찾아서가 아니다. 남들 공부법을 기웃거리고 있는 자체로 그 성적을 알 만하다. 경영에서도 벤치마킹이 늘 효과가 있는 건 아니다. 공부는 경영보다도 섬세하다.

 

그러니 만약 자녀가 중학생이라면 ‘시행착오’를 최대한 허하기를 권한다. ‘착오’가 거슬리면 ‘탐색’이라 해도 좋다. 뭐든 해 봐야 자기 것이 된다. 자습을 하든 학원 선생님을 선택하든, 자기 기준을 갖춰갈수록 집중할 수 있고 성과도 나온다.

고등학교에 들어오면 시행착오를 할 여유가 없다. 당장 1학년 1학기부터 입시에 반영된다. 이게 아닌가보다 싶어 학원 한두 번 옮기다 보면 1년이 후딱 간다. 그렇게 겉돌다 금세 고3이 된다.

시행착오는 학생에게 선택과 책임의 기회를 주는 일이다. 시행착오에는 버릴 것이 없다. 성공도 실패도 모두 더 나은 ‘자기 식’의 밑거름이 된다.

 

대치동에서는 새벽부터 줄을 서는 학부모들을 종종 본다. 자녀가 그 학원에 다니길 간절히 원해서 수고를 마다 않는 것이길 바란다. 혹, 그것이 자녀의 ‘시행착오를 줄여주기 위한 일’이라 믿는다면 한 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자녀를 아끼는 마음인 건 안다. 하지만 ‘아끼다 똥 된다’고도 했다.

 

 

로고스 논술구술학원

김정환 강사 

 

이룸이앤비_김정환.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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